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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말더듬 인정 못하는 이유 - 옥정달 교수 말더듬 자아치료


우리는 흔히들 주위에서 말더듬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라는 말을 여러차례 듣는다. 예전에 언젠가 말더듬 인정이란 부분에 대해서 글을 올렸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것의 중요성에 비추어 지난번에 올린 글의 내용과 가급적이면 표현적인 면에서 중복을  피하고 좀더 실제적으로 통제에 응용될 수 있는 내용으로 글을 올리고저 합니다.

말더듬의 완치로 가는데 절대 간과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한 관문 중의 하나가 이 "말더듬의 인정"일 것입니다. 말더듬으로 고생하다가 나름대로 어느정도까지 유창성 을 회복하였거나, 말더듬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와진 사람들 및 말더듬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아마 이 "말더듬의 인정"일 것입니다.

말더듬 인정이란 머리에 띠를 두르고 "나는 말더듬이다"라고 외치거나, 지하철등에서 "나는 말더듬이다"라고 외친다고 말더듬의 인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그 사람이 말더듬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 본인만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말더듬 인정이란 결국 남에게 인정을 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인정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왜 그럼 말더듬 인정을 해야할 까요 ? 물론 모두가 말더듬의 인정 관문을 거쳐야 할 필요성은 없습니다. 보편적인 말더듬이일 경우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다시말하면 전형적인 말더듬는 사람의 경우에는 반드시 이 말더듬 인정을 거쳐야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서 글에 올렸던 유창성 통제감 훈련도 일반적인 말더듬는 사람의 경우 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외상(자동차 사고-뇌손상이 아닌 경우, 갑작스런 부모의 이별등등)에 의해 말더듬이 시작된 경우라면, 일반적으로 말하는 신경정신과에서 심리치료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는 보통의 전형적인 말더듬는 사람의 경우임을 밝혀두고 싶습니다.

다시말하면 전형적인 말더듬이란 흔히들 말하는 2-4세경부터 말더듬이 시작된 경우 혹은 어린 나이에 말더듬이 시작된 경우이며, 또 혼자 말할 때등에서는 전혀 말더듬이 없거나 현저하게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는 경우이고, 노래를 부를때도 정상적으로
부를 수 있어야 되는 경우입니다. 말더듬 인정을 해야 어떠한 통제기법들도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럼 왜 말더듬는 사람들은 말더듬 인정에 어려움을 느낄 까요?

만약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어버렸다고 합시다. 물론 그 사람은 초기에는 엄청난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물론 여러가지의 이유가 있겠으나, 그 중에서 하나는 자신의 현재 사고당한 다리, 잘려나간 다리에 대해서, 자신이 영원히 아무런 도움없이 다른 사람들처럼 거리를 활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그럴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자신에게 현실적으로 존재해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겠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어느정도(개인에 따라 다소 다르지만)지난 후에 그 사람을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은 이미 벌어진 현재의 사실들을 인정하므로서(받아들임으로써) 다른 삶의 대안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할 수가 있겠지요. 물론 그 사람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오직 그만의 마음고생으로부터 벗어났을 것입니다. 이러한 예를 든 저 자신이 미안할 지경입니다.

한편 말더듬는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요? 위의 상황과는 다소 다릅니다. 아무리 심하게 말을 더듬는 사람일지라도, 그 사람은 어느정도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차라리 말하는 족족 말을 더듬는다면 그는 다른 마음을 가질 것이지만, 그래도 혼자 있을 때나 편안상황에서는 별 어려움없이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말더듬는 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사람은 좀처럼 자신의 그러한 문제를 인정하기를 싫어합니다. 회피한다고나 할까요? 여기서 말더듬과의 정면 승부는 시작됩니다. 이제까지의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말을 잘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강구했던 방법들이 성공했던 적이 과연 몇%나 될까요? 아마 0.1%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마치 코끼리가 뒷다리로 쥐를 잡는 꼴이 되겠죠. 이는 엄연한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즉 어떤 상황직전에 말을 더듬을 것이라고 예측을 했다면,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는 한 지 금까지의 전례로 볼 때 말을 더듬을 것은 뻔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본인만 인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을 했듯이, 그래도 말을 잘 나올때가 있는데, 왜 내가 그렇게 병신같이 말을 더듬어! 라는 식으로 자신에게 타이릅니다. 그러다보니 혼자 있을 때나 편안상황에서 말이 잘 나올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그야말로 눈물겨운 말더듬과의 투쟁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지금까지 해왔던 똑같은 , 판에 박힌 듯한 자신만의 말더듬의 독특한 행동입니다. 이러한 레파토리는 매번 똑같이 일어납니다. 그럼에도 본인만큼만 이러한 사실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유창성에 대한 강한 미련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유창성은 믿지 못할 친구와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필요없을 때는 그 친구가 내 곁에 다정하게 있어 줍니다. 그러나 내가 그
의 도움을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애타게 찾을 때는 그 친구는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필요없을 때 언제 없어졌는냥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나서 온갖아양을 다 떱니다. 말더듬는 사람이 혼자 있거나 편안한 상황에서는 유창성과 아주 수월하 게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정작 필요로 할 때는 그는 저 멀리 가고 없습니다. 그래도 매번 반복되지만 그 친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그 친구가 내가 어려울 때 한번도 나를 도와준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이러한 모순점을 깨달았다면 그 친구에 대한 미련을 더이상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그런 친구라면 없는 것보다 더 못하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친구를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합니다.

그러한 친구를 과감히 버리는 것이 말더듬의 인정입니다."

끝으로, 말더듬 인정을 하기 위한 작업이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말더듬이란 자신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어릴 때부터의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똑바로 보고 합리적으로 판단을 한다면 그 친구를 버리는 것도, 말더듬을 인정하는 것도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닌 듯 싶습니다. 하나더! 말더듬을 인정하려는 노력을 할때 말더듬 행동의 변화가 오기 시작합니다. 말더듬 인정의 첫 단계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말을 잘하려는 노력을 포기 하는 것입니다. 상황에 들어가기전에 강한 예측을 했다면, 지금까지의 자신의 이와  비슷한 상황에서 했던 자신의 행동들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지금 자신이 하려는 행동과 거의 똑같을 것입니다. 왜 아무 소득없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려고만 합니까? 바보가 아닌 이상 혹은 정신 이상자가 아닌 이상 실패할 줄 알면서, 실패가 눈
에 보이는데도 그 길로 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어차피 더듬을 것, 숨이나 푹쉬고 더듬자"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인 대안일 것입니다. 극도의 긴장상황에서 숨이라도 한번 쉬원스럽게 쉴 수 있는 용기, 비록 쉬울 것 같지만 대단
히 어렵습니다. 자신의 단점을 받아들이지 않고는 숨쉴 수 있는 시간도 가질 수가 없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내용이 길어진 것 같아 이만 줄일까 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글은 예전 대구대학교 언어치료학과 옥정달 교수님의 글을 가져온것입니다.-